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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 위스키 :"角瓶(각병)카쿠빈"

by 우사기모찌 2023. 6. 27.

안녕하세요

"우사기 모찌"입니다.🐰

 

원래는 오늘 글에서 "하이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하이볼에 앞서 일본 위스키 "角瓶(각 병) 카쿠빈"을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하이볼의 탄생은 산토리 위스키 "角瓶(각 병) 카쿠빈"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오늘은 "角瓶(각 병) 카쿠빈"을 먼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산토리사의 이력

 

산토리 "角瓶(각 병) 카쿠빈"은 원주(원액)를 수입하지 않고 일본 내에서 100% 제조, 생산하는 순수 일본 위스키입니다.

산토리의 모회사인 슈야가 1937년(쇼와 12년)에 발매되어 전용 유리병의 독특한 거북이 모양과 각진 형태가 특징이며, 각형 혹은 각진 병이므로 "角瓶"(각이진 병), "角"(각)이라고 불려지며 후에 제품명을 정식으로 "角瓶(각 병) 카쿠빈"이라는 이름으로 정하게 됩니다.

산토리사의 산토리 화이트와 산토리 올드, 토리스 위스키 등과 함께 현재까지도 인기가 높아 판매가 계속되는 블렌디드 위스키 장수 제품입니다.

발매 초기에는 산토리사가 제조/발매원이 되었지만, 2014년 10월 1일에 행해진 그룹 회사 내 조직 변화에 수반해 산토리 주류 주식회사의 증류주 부문이 분리되어 나와 산토리 스피리츠 주식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角瓶(각 병) 카쿠빈"위스키는 산토리 스피리츠 주식회사에서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또, 2015년 1월 1일 자로 산토리 비어&스피리츠 주식회사가 "산토리 주류 주식회사"를 상호를 변경하였습니다.

2022년 7월에 이루어진 국내 주류사업의 조직개편에 따라 산토리 주식회사가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7월 제조·출하분부터 같은 시기 시점에서의 전제품 라벨에 기재된 제조자가 '산토리(주)'로 제조사명이 변경되었습니다.

산토리 회사에서 "角瓶(각 병) 카쿠빈"의 모토가 되는 초기 위스키를 중심으로 "角瓶(각 병) 카쿠빈"을 이용해 제조한 "하이볼" 및 "미즈와리" 등의 제품들이 캔으로 발매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 위스키의 시작은 산토리 위스키에서 시작되었기에 "일본의 위스키 역사"의 그리고 겹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산토리 위스키 공장
산토리 야마자키 공장

 

산토리 위스키의 역사

 

1923년에 일본 국내 위스키 사업을 개시한 슈야의 창업자 토리이 신지로는 스카치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법을 배웠습니다.

타케츠루 마사타카(닛카 우이스키 창업자)를 섭외해 공장 건설과 숙성 등 수년간의 준비 기간 끝에 1929년 몰트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첫 본격적인 일본 국내 제조 위스키로서 "百札"(백찰)[이후의 산토리 화이트]을 발매하였습니다.

 

발매 당시 제품의 슬로건을 "결코 외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까지 붙여 일본 위스키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위스키 맛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일본인들은"百札"(백찰)가 위스키 특유의 태운 듯한 향기 등에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위스키 제조과정을 스카치위스키를 모방하였기에 피트를 사용하게 되는데 피트에서 나오는 연기와 열로 인한 독특한 피트향이 거부감으로 다가왔음)

 

일본 국내시장에서의 외면받은 원인은 소비자들의 서부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위스키 시장 자체의 성숙도가 낮은 데다 경험 부족으로 제조된 초기의 "百札"(백찰)은 피트 냄새가 너무 강한(소위 스모키) 경향이 있어 마시기 어려운 술이 되어 버렸습니다. 당시 원주(원액)의 숙성도나 블랜딩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 타케츠루는 제조 과정 변경을 요구했지만 위스키 사업에 벌써 많은 투자금과 시간을 투입하였기에 추가 투자를 할 수 없었고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경영 차질을 막기 위해 토리이는 위스키 기존의 "百札"(백찰) 판매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듬해 1930년에는 후속 제품인 위스키로 이카사츠(赤札)[이후 산토리 레드]를 내놓지만 이 역시 매출이 나오지 않아 판매 중단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부터 토리이와 타케츠루의 입장 차이발생하며 둘 사이가 멀어지게 됩니다.

 

위스키의 일본 국산화라고 하는 기본 목표는 같았지만 , 양조장의 아들로서 위스키의 본고장이 스코틀랜드까지 가서 위스키를 배운 타케츠루가 스코틀랜드 정통 위스키 제조방식만을 고집하였고, 약재료 도매상에서부터 위스키를 제조를 배우고 광고 전략에도 능한 경영자 토리이는 타케츠루 의견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토리이는 시간이 갈수로 적자폭이 커지는 위스키 사업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슈야의 주력 상품 "赤玉ポートワイン"(아카타마 포트 와인」)[이후의 아카타마 스위트 와인]이 성공하면서 얻은 수익을 대부분이 위스키 사업에서의 투자하면서 적자폭을 메꿀 수 없었던 토리이는 자회사 비즈니스로서 실적을 올리고 있던 흡연자용 치약"モーカー歯磨き粉" (스모카 치약」)의 제조권과 상표권까지 매각하게 됩니다.

 

토리이는 초기 위스키 발매의 대실패하게 되어 이를 밑거름 삼아 정통 스카치위스키 제조방식을 고집하던 타케즈루에게 장남 토리이 요시타로를 맡기게 됩니다. 타케츠루에게 위스키 제조의 책임자로서 위스키 제조 교육을 받은 토리이 요시타로는 쉬지 않고 원주(원액) 연구를 하고 피트를 굽는 방법, 증류하는 방법 등 시행착오를 거치며 1932년에는 '산토리 10주년 기념 위스키 "角瓶(각 병) 카쿠빈"을 발매하게 됩니다.

 

1934년 타케츠루는 슈야와의 계약 만료에 따라 퇴사를 하게 되고 토리이는 위스키 제조 방침을 대대적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후 위스키로서의 충분한 품질을 달성하면서, 일본인도 받아들이기 쉬운 맛, 더해서 수익까지 올릴 수 있는 상품의 개발에 집중하였고 1935년에는 "サントリー特角"(선토리 특각)을 발매해 소비자의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산토리 카쿠빈 위스키
산토리 위스키 "角瓶(각 병) 카쿠빈"

산토리 위스키 "角瓶(각 병) 카쿠빈"의 탄생

 

"百札"(백찰)을 발매한 시기로부터 8년이 지난 1937년 10월 8일에 거북이 모양의 병에 노란 라벨을 곁들인 지금 형태의 상급 위스키 "サントリーウヰスキー12年"(산토리 우이스키 12년)을 발매하게 됩니다. 현재의 "角瓶(각 병) 카쿠빈"이라고 불리는 위스키입니다.

 

타케츠루의 주도로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저장/축적된 원주(원액)를 블랜딩 베이스와 토리이의 기획으로 일본인 취향의 맞는 고급 위스키로서 완성되었습니다. 토리이가 몇 번이나 피트의 밥 짓는 방법을 바꾸어가며 원주의 블랜딩을 시행착오해 완성시킨 원주(원액)를 완성시켰는데 이것을 도쿄의 고급 지역 긴자의 BAR 등에서 술집 점주들에게 테이스팅을 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등 엄청만 노력을 거듭해 탄생시킨 "角瓶(각 병) 카쿠빈"은 스모키 한 원주(원액)가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제조한 위스키 원주(원액)가 숙성을 거쳐 생산량이 늘은 반면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엄청난 재고로 슈야는 도산밖에 없다고 하는 위기 상황하였지만 일본이 전시 체제에 돌입하고 외국산 위스키가 수입 정지되면서 "角瓶(각 병) 카쿠빈"의 판매가 입도적으로 늘게 됩니다.

 

토리이의 고생이 고비 끝에 마침내 실현되는 순간이 되었고 손실을 거듭하던 슈야 위스키 사업은 "角瓶(각 병) 카쿠빈"이 성공궤도에 오르면서 몇 년간 안긴 적자가 한순 흑자로 전환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해군에게 대량 납입을 하게 되고 해군에게도 큰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해군 지정품"이 된 것도 앞으로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거대한 군수판로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군수품이라는 이유로 통제가 어려운 태평양전쟁 당시에도 원료가 되는 곡물 등을 공급받는 등 특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角瓶(각 병) 카쿠빈"은 해군뿐만 아니라 일본 육군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며 군사들에게 기호품 품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가쿠빈은 산토리의 최상급 위스키로 시장에 브랜드 이미지를 쌓게 됩니다.

 

산토리 "角瓶(각 병) 카쿠빈" 스테디셀러 상품으로 정착

전용 맥주잔에 담긴 '카쿠 하이볼'의 탄생 발매 당시 명칭은 '산토리 우이스키 12년'이었으나 실제로 원주(원액)의 일부를 12년 산을 사용했을 뿐 스카치 등의 규준에 비해서도 다소 과대 포장한 명칭이어서 오래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각진 병의 형태에서 애음자들 사이에 어느덧 '"角瓶"의'각'이라는 단어가 애칭으로 정착되어, 1950년대 정식으로"角瓶(각 병) 카쿠빈"으로 명칭을 정하게 됩니다. 다만 1990년대까지 병에"角瓶(각 병) 카쿠빈"의 명칭의 라벨은 붙어 있지 않아 단순히 '산토리 위스키'를 칭했을 뿐입니다.

원주(원액) 사용비율이 높아 당시 일본시장에서는 특급 위스키로 구분했었지만 다른 고급 올드 위스키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고정팬글이 늘어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지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사이에도 증류소 정비와 산토리 자사에 의한 그레인위스키 생산 개시 등으로 품질과 블렌딩 개량이 계속되었다.

1989년(헤이세이 원년) 4월 위스키 등급 폐지와 세제 개정에 따른 일본에서의 위스키 가격의 대폭 저하에 따라 1990년대 이후에는 대중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격이 저하되어 국산 대중 위스키 시장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다.

그럼에도 출시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병의 형태와 블렌드에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적당한 향을 가진 맛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으며 재패니즈 위스키의 대표적 존재가 되고 있다.

 

하이볼
산토리"角瓶(각 병) 카쿠빈" 하이볼 -카쿠하이볼

 

산토리"角瓶(각 병) 카쿠빈" 하이볼 -카쿠하이볼

산토리에서는 침체 경향에 있던 일본 위스키 시장에서의 판매증가를 목표로 2008년부터는 "角瓶(각 병) 카쿠빈"을 소다로 희석하여 마시는 하이볼의 보급·홍보 활동을 개시·주력하고 있으며, 이 결과 전국적인"카쿠하이볼"붐이 일어나 2008년·2009년과 2년 연속 동사의 위스키 출하량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카쿠하이볼"붐으로 2010년 6월 이후에는 원주 부족의 염려로부터 출하량을 조정할 필요는 출하량 조절에 신경을 쓰며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일본의 국민 술 "카쿠하이볼"에 탄생이었습니다.

 

실제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면 꼭 구매하는 것이 "돈키호테"에서 "角瓶(각 병) 카쿠빈"을 구매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필수구매품 중 약종류, 화장품 종류들도 있지만 "角瓶(각 병) 카쿠빈"이 한국인들에게도 사랑받은 만큼의 가격대비 맛있는 위스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오늘 "角瓶(각 병) 카쿠빈"에 대해 이렇게 긴 길을 쓴 이유는 "角瓶(각 병) 카쿠빈"에 대해 알고 마신다면 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오늘은 "하이볼"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으나 일본 하이볼은 "角瓶(각 병) 카쿠빈"에 의해 탄생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먼저 "角瓶(각 병) 카쿠빈"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하이볼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